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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30

9/1

 

비. 작업실의 사운드 테스트. 운동.

 

9/2

며칠 전부터 나무가 있던 자리에 교도소 담벼락 같은 시멘트 옹벽이 둘러쳐지고 있다. 굳이 왜 시멘트 벽을 치는 지 묻자, 일꾼 한 명이 말한다.

"도시 사람들 뱀 나오는 거 싫어하거든."

오늘도 또 비가 온다. 타운 하우스가 들어선다는 이곳에서는 나무들이 계속 잘려나가고, 잘린 나무 둥치는 우리 밭에 내쳐졌다.

나무가 잘릴 때 마다, 나도 잠시 나무가 된다. 이제 이곳에는 새소리보다 중장비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구나. 벌써 이 년이 넘어간다.

 

9/3

밭으로 가는 중 비를 만나서 되돌아오다. 오후에 운섭 형님이 오셔서 대문 마무리를 했다.

오래 기다리던 앨범들이 도착했다. 특히나, Jaskulke의 Senne part. II

Gregory Scott이 진행하는 팟 캐스트를 듣다. Dave Pensado와 나눈 얘기 하나를 소개했는데, 각 시대별로 중요한 주파수 대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70 년대엔 3 kHz, 80년대엔 8 kHz가 중요했고, 지금은 5k와 10kHz라고. UBK의 Clariphonic 홍보일까요? 그나저나, Pensado 씨. 혹시 목디스크는 없으신지. 직업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고요.

 

9/4

9월 첫 방제. 이제, 나도 함께 방제를 한다.

키토목초 6L + 소금 1.2kg + EM-B 6L + 아미노산 1.2L + 광합성세균 6L in  물 1200L.

이 미친 더위에 쩍쩍 갈라지고 누렇게 탄 아기 귤이 점점 늘어간다.  

 

9/5

여전히 웅웅거리는 중장비소리.

그래도, 햇살은 이렇게 따뜻하다. 공사장 반대편을 바라보며 햇살이 내리는 곳에 앉아있으면, 이곳은 여전히 천국이다. 햇살이 내리쬘 곳이 있고, 아직도 떠나지 않은 새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예초기를 돌리다. 그렇게 말썽이던 예초기가 말을 잘듣는 것만으로도 일이 수월해져서 감사하다. 예초기가 예뻐보인다.

첫 풋귤 수확을 했다.

 

9/6

손가락 진료를 받으러 서울로 가다. 비행기 안에서 Sylvia Massy와의 인터뷰를 듣다. 각 시대를 정의하는 키워드를 꼽아달라는 호스트의 말에, 한참 생각하던 그녀는, 'Root' (60s'), 'Soul' (70s'), 'Processed' (80s'), 그리고 'Revolt' (90s'), 라고 얘기했다.

진료를 마치고 순라동에서 적이형을 만나 차를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과수원을 비운 사이에 다올이 내려 와서 풋귤 수확을 도와주고 돌아갔다. Summing mixer가 헝가리에서 왔다.

 

9/7

비가 후두둑 내리는 날. 어제 다올과 아내가 포장해 둔 풋귤 25박스를 출하하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예초를 하고, 추가로 지원 받은 박스 100개를 더 가지고 왔다.

 

9/8

돌담 작업을 하러 인부들이 왔고 반나절 만에 보수를 마치고 돌아가셨다. 견적보다 돈을 덜 받으시겠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삼나무가 뽑힌 자리엔 이제 다시 돌담이 쌓여졌지만, 포크레인이 파헤쳐놓은 땅을 볼 때마다 여전히 어딘가 아프다.

나는 예초를 하고 아내는 풋귤을 땄다. 작업 도중에 아내가 벌에 쏘인 것 같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벌에 쏘인 건 아닌 듯 금세 아물었다.

오늘, 하늘과 바다.

 

9/9

차창에 김이 서린다. 오랜만에 긴팔 옷을 입었다. 수확, 포장.

껍질채 먹는 풋귤은 겉모양도 중요하기에, 수확도 포장도 귤 작업보다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9/10

수확. 31 박스 발송.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성분 분석용 시료을 발송했다.

풋귤을 따던 중, 나무에서 쉬고 있는 뱀을 만나 인사를 했다.

 

9/11

15 컨테이너 수확. 포장. 하나하나 광목으로 다 닦고, 무게를 재고, 포장을 한다.

 

9/12

37 박스 발송. 수확. 내일 작업의 밑준비를 하고 돌아오다.

 

9/13

종일 예쁘게 비가 내리는 날. 창고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포장을 했다. 1 박스는 화정에게 줄 선물로 남겨두었다.

 

9/14

60 박스 발송. 광합성 세균 6 L를 받아오다.

 

9/15

오랜만에 숲길을 걷다. 가을 버섯이 군데 군데 눈에 띄었다. 

시내에 가서 일을 보다. 세차도 하고 나도 목욕을 하고, 먹거리 쇼핑도 하다. 곧 추석이라 가족들의 러쉬다. 집에 오시는 손님들의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매트리스 두 개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목욕탕에서 손가락 운동을 할 때마다, 혹시 손가락이 굳어 버리진 않을까, 펴지지 않는 건 아닐까. 불쑥불쑥 걱정이 치밀 때가 있다.

 

9/16

방제 및 품질 관리. 유기 칼슘 6L + 소금 1.2kg + EM-B 6L + 아미노산 1.2L + 광합성세균 6L in  물 1200L. 작년에 만들어 둔 유기 칼슘을 계속 쓴다.

씨를 뿌린 지 엊그게 같은데 벌써 코스모스가 껑충하게 키가 컸다. 

저녁에 강아솔 씨의 공연을 보고 돌아왔다. 심지어 사인 시디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내 앨범도 하나 사서 갈 걸 그랬다 싶다.

 

9/17

서울 부모님과 고모할머니께서 오셨다. 반딧불이를 보았다.

 

9/18

고모할머니께서 마당의 부추를 뽑아 김치를 담가주셨다.

가족들과 과수원에 들렀다가 여기저기 산책을 다녔다. 중산간에는 억새꽃이 발갛게 피기 시작한다. 

 

9/19

풋귤의 시험 성적서가 날아왔다. 풋귤에 함유된 플라보노이드가 대략 녹차의 10배 수준이다. 

아침 일찍 떠나신 부모님 배웅을 못하고 오두막에서 미팅을 하다. 유기농협회에서 의뢰한 음악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손가락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걱정이 된다.

 

9/20

 

9/21

친환경인증 지원비를 신청하고, 부산 부모님을 공항에서 모시고, 온천에 들렀다가, 저녁을 사드리고, 돌아왔다.

 

9/22

아침을 먹자마자 어머니를 모시고 운동장을 걸었다. 지금 어머니는 백 미터 이상을 한 번에 걷지 못하신다.

부모님과 귤밭에 갔다 점심을 먹고, 삼촌을 만나러 갔다. 삼촌의 관사엔 작은 텃밭도 있고, 온갖 아름드리 나무들이 집을 감싸고 있었다. 

 

9/23

성당에 가서 추석 미사를 드렸다.

 

9/24

부모님께서 부산으로 가셨다.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하자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9/25

차에 치인 아기 비둘기를 동백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다.

 

9/26

예초를 마무리하고, 물을 받고, 내일 작업 준비를 했다.

채칼로 풋귤을 다듬어서 청을 담갔다.

 

9/27

엽면 시비. 키토목초 6L + 소금 1.2kg + EM-B 6L + 아미노산 1.2L + 광합성세균 6L in  물 1200L 

깍지벌레와 선녀벌레가 거의 사라졌다. 어김없이 과수원에는 분홍빛 여뀌가 번져간다. 

 

9/28

작업. Creamer plus의 레벨 테스트부터 하다. Tube 악기라 좌우 레벨이 일정치 않다.

로즈에 tube 장비를 연결하니 배음이 엄청나게 올라온다. 건반으로 무언가를 다 해보려니 쉽지가 않다. 

점심 시간에 과수원 길을 따라 걸었다. 잠자리가 흐드러지게 날아다닌다. 

 

9/29

도시락을 싸서 오두막으로 출근하는 일상이다. 트럭이 고장만 나지 않았어도 오가는 일이 좀 더 편했을텐데, 수리하러 갈 시간이 없다.

9월이 다 지난 지금, 아무리 나무를 베고 땅을 뒤집고 콘크리트를 부어대도, 아직 과수원에는 반딧불이들이 산다.

 

9/30

기타를 다시 잡다. 석 달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