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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6/21

5/29

이파리 군데군데에 더뎅이 병의 기미가 보였다. 곧 보르도액 방제를 한 번 더 해야겠는데, 마음이 급하다.

부모님과 브런치를 먹고, 두 분을 공항에 모셔다드렸다.

5/30

용준씨와 자원씨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몇 년 만에 대리운전으로 집에 돌아왔다.

5/31

하루종일 둥지를 지키던 비둘기가 둥지 밖에 앉아있는 시간이 부쩍 길어졌다. 뭔가 변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둥지 안을 들여다 보고 싶지만,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괜히 신경 거슬리는 일을 하고 싶진 않다.

(IFS#6) Wardenclyffe + Slö. 불협 리듬과 불협 피치.

6/1

비료 업체에 전화를 했다. 6월 20일 안에 갤럭시934를 입고시키기 힘들 것 같단다. 육지에서 공급해오는 비료라 그렇다. 9월 까지는 들어오겠지요? 아... 네. 그럼요. 여름 비료도 아직인데 벌써 가을 비료 얘기를 하는 게 낯설은지 김 부장님이 주저주저한다.

마음 같아서야 더 좋은 비료를 여름에 뿌리고 싶지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도내에서 비료를 만드는 회사는 몇 군데 있지만, 친환경 공시 제품을 만드는 곳은 이제 한 군데 밖에 남지 않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름 비료는 보카시 1호, 가을 비료는 갤럭시 934다.

부모 비둘기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는게 이상하다, 싶어 살금살금 옥상으로 올라갔더니, 세상에. 노란 솜털로 덮인 새끼 두 마리가 비좁은 둥지에서 몸을 맞댄 채 엎드려있다. 축하해. 너희들은 5월도 아닌, 6월도 아닌 때에 태어난 것만 같구나.

우리는 몸집이 큰 아이를 메이로, 조금 작은 아이를 쥰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새끼 제비 세 마리의 이름도 사월, 오월, 유월로 붙여주었다.

(IFS#6) 가상 악기와는 달리, Rhodes는 건반 하나만 눌러도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마치 엄청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처럼.

6/2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짙은 아침이 잦다.

창가병 방제 #3-1: 보르도칼 2 포 + 기계유 5 L in 1000 L

레몬의 여름순이 벌써 불긋하게 자랐다. 오늘 보니 봄 잎의 상태가 또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방제하기 날씨도 좋고, 타이밍도 좋은 날.

김 부장님이 비티력 네 포를 밭에 부려두었다고 연락을 주셨다. 친환경 농자재 지원사업은 신청 내역을 변경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정부 들어 친환경 지원 사업이 부쩍 많아졌다. 농자재에 한해서만은, 돈이 들 일이 별로 없다.

어딘가 다친 듯 비틀거리는 사슴 벌레를 보았다. 혹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오늘도 뻐꾸기는 가장 높은 곳에서 노래를 하며 새끼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메이와 쥰이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등의 깃털이 알록달록해진 것이, 이젠 제법 멧비둘기 같다.

보현과 숲을 걷던 아내가 초록빛 유혈목이를 보았다.

(IFS#6) 많이 다듬어졌다. 그런데 다듬어지는 게, 마냥 좋은 건가.

6/3

팽나무알락진딧물이 눈발처럼 온 동네에 날아다닌다.

오전에 갑작스런 비소식이 찾아왔다. 부랴부랴 방제 계획을 미루고, 밭에 잠시 들렀다. 정낭 안에 김 부장님이 두고간 비티력을 챙겨 창고로 옮겨두었다. 곧 수리할 생태화장실을 점검하고 돌아왔다. 경첩도 갈고 문짝도 고쳐야 한다.

소나무 곳곳에 하얀 -균사류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또 걱정 스위치가, 딸깍 하고 켜진다. 나무 병원에 연락을 해봐야겠다.

목선이 예쁜 비둘기 한 마리가 옥상에 앉아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우리는 저 비둘기가 페이라고 믿는다. 저렇게 예쁜 목을 가진 비둘기는 페이 밖에 없을 거라고, 믿게 되었다. 메이는 몸집도 크고 활달하지만, 쥰은 메이에 비해 몸집도 작고, 내향적이다. 메이와 쥰이 제법 길쭉한, 검은 부리를 둥지 아래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어딜 다녀올 때나, 나도 위를 쳐다보며 인사를 건넨다. 내 목소리를 기억해 달라는 듯이, 중얼거린다.

6/4

창가병 방제 #3-2: 양은 #3-1과 같다.

어디선가 개구리인지 맹꽁이인지 소리가 들린다. 어제 보았던 사슴 벌레가 풀섶에 죽어 있었다. 레몬 나무 아래에 사슴 벌레를 묻어주고 일을 시작했다.

오늘 아침 경매를 못 봤다고 생선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부모 비둘기가 없는 틈을 타 메이와 쥰을 보러 옥상에 올라가곤 한다.

어찌어찌하여 공립 나무 병원에 연락이 닿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의사선생님이 오신다.

6/5

망종. 보리밭이 비어간다.

좋은 옥돔을 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일찍 들러서 눈으로 확인을 하고 택배를 부탁했다.

치자 나무, 앵두 나무, 쟈스민에 영양제를 듬뿍 뿌려주었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나무도 리액션을 한다는 말을, 웃어넘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메이와 쥰이 나를 내려다 보고, 나는 인간의 말이나마, 계속 말을 건넨다.

(IFS#6) 맘에 들지 않는다.

IFS#7 시작. Rhodes + Slö + Amsterdam Cream Tremolo + Blooper.

6/6

작은 아이들이 점점 커간다. 둥지는 점점 더 비좁아진다.

오늘 처음 새끼 제비가 네 마리인 것을 알았다. 가장 덩치가 큰 아이에게 우린 "Summer"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IFS#7) Line level로 다시 녹음을 받았다. 원하지 않는 노이즈를 피하면서, 원하는 노이즈만 원하는 만큼 살리려는 작업이 우습기도 하다.

6/7

순 정리. 덩굴 걷기. 과경지 정리. 창고 안으로 꿀벌들이 몰려드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대과가 많아서 걱정이다. 걱정 또 걱정. 과수원에선 걱정이 끝도 없다.

접시꽃이 꽃대 끝에서 피면 장마가 끝난다는 말이 있다지. 그 날이 아직은 멀리있구나.

아기들의 부리가 많이 길어졌다. 메이의 머리털이 쫑긋 섰다. 처음 페이를 만났을 때, 딱 그만큼 아이들이 컸다.

(IFS#7) Slö 로 패드 사운드를 만들다. 소리를 만지다 보면 어릴적 하던 찰흙 놀이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정신없이 소리를 만지다보면 마우스도 노브도 아닌 맨손으로 소리를 주물거리는 것 같다.

6/8

기연, 윤정씨와 생태화장실과 보일러실의 보수를 했다. 나무 경첩을 갈고, 위 아래로 단단히 고정할 쇠붙이를 달았다. 너와도 튼튼히 타카로 박고, 문고리도 교체했다.

나무병원에서 두 분의 '의사님'이 오셨다. 문제의 흰 점은 솔잎 깍지벌레 류인 것 같고 또 어떤 것들은 단순한 거미집 같다고 하셨다. 깍지벌레를 없애려면 나무 주사를 놓는 것이 가장 좋지만, 송진이 나오지 않는 겨울철에만 약효가 있다고 하신다. 그러려면 2월까지 기다려야한다고, 때가 늦은 것 같다고 한다. 효과가 있을 지 없을 지 모르지만, 일단은 나무 전체에 약제가 흠뻑 젖을 정도로 방제를 해 주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약을 치더라도 비둘기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에나 할 수 있겠다.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점점 커진다. 오늘 낮에는 쥰과 메이 중 한 마리만 보였다.

아내는, 벌써 서운한 모양이다.

영국에서 보낸 VCMC가 두 달 만에 도착했다. 귤꽃이 피었을 때 소리를 담는 건, 늦었다.

숲길을 걸으며 IFS#7를 모니터했다. 내가 뿌린 소리 사이사이로 숲의 소리들이 자리를 잡으며 귀로 들어왔다. 차경借景을 하듯, 차음借音을 했다.

6/9

제비 새끼 한 마리가 더 보인다. 우린 가장 작은 녀석에게 "mid-"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4월 - 5월 - 6월 - mid - summer.

하지 무렵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귀현씨와 현상을 만나 성게와 톳을 잔뜩 받아왔다.

(IFS#7) 제 멋대로 템포를 잡아 루프를 쌓아올려도, 신기하게 자연스럽다. 템포 자체가 없으면, 템포를 어긋날 일도 없는 것이다.

6/10

장마의 첫 날이다.

이른 아침, 메이가 둥지를 떠나 대문 위에 앉아 있었다. 쥰은 보이지 않는다. 잔디밭에 낯선 새 똥이 보인다. 비로소 살금살금 날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돌아오는데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새들이 부엌 앞 담장 위에 있으니 조심해달라고.

목선만 봐도 쥰은 영락없이 페이다.

페이와 티엔을 처음 만났던 사 년 전 이 맘 때.

(IFS#7) 거의 완성. 리미터 몇 개를 비교해본다. 누군가 그런다. "음악이 시끄러운지 아닌지는, (머리를 가리키며) 여기에서 얘기해주는 거야. (귀를 가리키며) 여기가 아니라."

6/11

어른들 속에 아이가 있듯, 아이를 보면 어른이 보인다.

6/12

아침 산책을 다녀온 나를 아내가 조용히 불렀다. 부엌에는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문 밖을 가리키는 아내 손 끝에, 메이와 쥰이 보였다. 틀림 없이 음악을 듣고 있어. 아내가 조용히 말해주었다. 담장 위에 앉은 메이와 쥰은 몸을 웅크렸다 폈다가 눈을 감았다 떴다부산한 듯 움직이면서도 분명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그 때 부모 비둘기 한 마리가 훌쩍 날아왔다. 메이와 쥰은 날갯짓을 하며 부모새-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를-를 맞이했다. 부모새는 아이의 부리에 자신의 부리를 박고, 라틴 댄스를 추듯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어 댔다. 엄마는 아이가 함께 춤을 추듯 빙빙 돌며, 한 마리 한 마리 그렇게 먹이를 먹였다. 1 분도 안 되는 짧은 "춤"이 끝나고, 엄마는 다시 멀리 날아가버렸다. 'crop milk'을 먹는 순간이었다.

새끼 제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부산에서 부모님이 오셨다.

(IFS#7) 더 크게, 더 크게, 더 시끄럽게, 하는 마스터링도 싫지만, 조용하게, 우린 조용하게, 사람들이 알아서 볼륨을 올려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마스터링도 싫다.

6/13

제비 오둥이들이 그네를 타듯 전깃줄에 앉아있다. 나란히 앉은 형제들은 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한다. 주춤주춤 옆으로 걷는 걸음도 많이 서투르다.

당분간 이어폰과 헤드폰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귀를 아끼기 위해서.

(IFS#4) soothe 2로 레조넌스를 다듬어 보지만, 어렵다.

(IFS#7) -14 LUFS로 limiting.

6/14

나는 음악으로 무언가를 표현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만들어진 음악이 나의 무언가와 이어졌을 뿐.

음악은 너무나 크고, 음악을 '한다'는 말은 여전히 참 높이 있다.

(IFS#5) 작업 w/ Avalanche run v.2

6/15

부모님이 가셨다.

제비도, 비둘기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날아간 걸지도.

6/16

하늘이 예쁘고 맑다. 나무 아래 덩굴을 걷어 내었다. 아직은, 특별한 병충의 기미가 없다.

여름 비료 40 포대를 받다. 염증이 다시 도졌는 지 보현이 다시 혈뇨를 누다. 모든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나은 게 아니다. 다른 항생제 처방을 받아왔다.

6/17

비. 집 정돈을 하고, 보현의 계단 커버를 찾아왔다.

보현에게 IFS#7 를 틀어주자, 온 몸을 이완시킨 채 정신 없이 잠에 빠져버렸다.

엘링 카게의 책을 다 읽다.

(...)

나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는 걸 좋아하는데, 도시에서 점점 강해지는 소음의 정도에 새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본 연구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새들의 지저귐은 달라졌다. 저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소음과 경쟁할 수 있는 고음으로 대체되었다.

(...)

엘링 카게 - 혼자만의 침묵 중

6/18

비.

친환경 인증 담당자를 만났다. 그분은 창고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연방 사진을 찍으신다. 전정은 어떻게 했는지, 만들고 있는 칼슘 액비의 원료는 뭔지. 말통에 든 저 액체는 뭔지. 예초기는 있는 지. 저건 뭔지. 저건 또 뭔지.

오두막 앞의 동백 나무 속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리다.

비옷을 입고 보현과 빗속을 걸었다.

새로운 방향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IFS#8) 'Fundamental' 테스트.

6/19

가을날 같은 하루다.

4월, 5월, 6월, mid. 그리고 summer는 우애 좋게 아직도 함께 논다. 옆집의 빈 제비집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아빠 엄마가 다가올 때면 여전히 날갯짓을 하며 반긴다.

iPad w/ granular borderlands 테스트.

6/20

'noise of silence'

(IFS#5) v475 + avalanche run v.2. 그런데, 이 곡은 가망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6/21

상순 부부, 힘찬이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mid'도 'summer'도 모두 떠난 하짓날. 또다른 제비 한 쌍이 빈 벽에 둥지를 짓기 시작했다. 돈나무의 여름순을 잘라주었다. 서늘한 삼나무 숲을 걸었다. 커다란 달팽이가 보였다. 직박구리 한 쌍이 비자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있다. 가을이 올 때까지, 모두 함께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