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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3/18

2/14

옆집 어르신들께 늦은 새해 인사를 드렸다. 동진과 통화를 했다. 동쪽 어딘가에 거처를 구한 모양이다.

2/15

멀티트랙 레코더를 주문했다. 서비스 센터에서 PMD430 수리가 안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었고, 단종된 모델이라는 것이다. 오래, 함께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2/16

동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7 년의 시차가 느껴지지 않는다. 문득 옛 친구란 좋은 거구나 싶다.

아내가 돌아왔다.

자형이 project dinner 자료를 보내주었다. bacterial delivery라, 생소한데 궁금하다. 면역학 공부를 해야 하나. 이 일을 하는 게 맞기는 한가.

2/17


액운을 쫓는 명태는 동쪽을 보아야한다고 해서, 머리를 동쪽으로 돌려두었다.

눈이 내린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창문 턱에 눈이 쌓였다. 강풍 경보가 떴다.

순용과 길게 통화를 했다.

기타를 치다.

DNA 백신, Cancer 백신 공부를 (조금) 했다.

2/18

추워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 온도가 15도다. 마루 보일러를 켰다. 모든 도로가 결빙되었다는 문자가 온다.

Chihei씨의 새 음반 Late spring.

새 앨범 작업 시작. Song#1의 윤곽이 보인다.

소나무 제선충 약을 사오다.

2/19

여전히 추운 날이다. 그래도 어제보단 따뜻하다. 손이 얼었다. 언 손으로 기타를 쳤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추운 것은 특권이다, 생각한다.

차를 진하게 내리고 엘리엇 스미스를 들었다. 지금은 어느새 전 세계 모든 뮤지션들이, Undo와 Redo, Cut & Paste를 무한에 가깝게 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로 녹음을 하고 있다.

Song#1이 더 또렷해졌다. Song#2 시작.

2/20 

Cast some cherry blossoms by the river

Blowing through the flowing of my heart

If you see me somewhere down the river

Come and stand beside me, it's alright.

Song#1 송폼 (거의) 완성.

Song#2 송폼 변화.

동네 운동장이 다시 열렸다. 쉬지않고 달렸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봄 소풍 길, 방울새 한마리가 소나무에 오른다.

아내의 손가락에 노린재 한 마리가 앉았다.

어느 팬이 보내준,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노란 꽃이 피었다.

2/21

Song#2 송폼 거의 완성. 어깨가 아파 계속 자세를 바꾸며 기타를 쳐야한다.

2/22

Song#3, #4, #5,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기타 줄을 흐트러뜨리고, 손이 가는 대로 목소리가 가는 대로 치고 불러 녹음을 하고,

묵혀둔다. 키도 진행도 화성도 아무 것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고.

제멋대로 기타줄을 튜닝하면 모든 질서가 흐트러진다. 알고 있던 것을 최대한 지운다. 그런 'unlearning'을 거치고 나면 머릿속 클리세들이 꼬여버린다. 뇌가 당황하는 그 때, 붙들고 담았다 잊어버린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내보면, 내가 만든 것이 내가 만든 것 같지가 않다.

그 때가 나는 몹시 기쁘다.

과수원 학교 개학식. 보현을 데리고 과수원에 갔다. 막걸리를 땅에 뿌리며 기도를 했다.

카세트 데크가 돌아 왔다. 역시 수리는 되지 않았다.

논스톱 달리기.

십대 이후 처음, 믹스테입을 만들었다.

카세트 테잎의 소리는 기억 속의 소리보다 좋았다.

기억 속의 카세트란, 특히 시디가 나온 뒤엔 언제나 열등한 매체였다. 그런데, 카세트가 정말 그렇게 '후진' 저장 매체였을까.

소리에 우열이 있을까. 있다면 무얼까. 노이즈와 소리의 S/N 비율? 와우앤플러터? 주파수 응답 특성?

이상한 소리나 재미없는 소리는 있을 지 몰라도, 열등한 소리는 세상에 없다. 사람도 그렇듯이.

다리에서 내려다본 바닷 속 땅, 물결. 바닷풀.

2/23

현상이 꿈에 나왔는데, 일어나보니 현상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이럴 때가 제법 있다.

한 해 농사 계획과 보조금 신청 건들을 정리하였다. 

패화석과 골분은 도내생산품도 괜찮다고, 친환경 담당자가 얘기해준다. 코리아피트에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EM센터에서 견적을 받았다. 조금씩 단가가 올랐는데, 실은 예전에 워낙 쌌던 것이다.

테입별로 PMD-430 테스트. 메탈 > 크롬 > 노말 순으로 아지무스 조정이 쉽고 좌우 밸런스가 좋다. RTM 테입이 데크와 어딘가 궁합이 안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돌다, 서버린다.

Song#3 송폼을 다듬다 말았다. Song#4 스케치해 두다.

Portastudio 246 도착. 상태가 상당히 좋다.

2/24

Song#4 송폼을 거의 다 다듬었다.

갤럭시934와 다싹 견적서를 받았다.

멧비둘기가 소나무로 왔다! 바비일까.

소나무 제선충 주사를 맞췄다.

보현 목욕을 해주었다.

테입 음질 테스트. RTM 테입이 유독 말썽인데, 이유를 모르겠다. 메탈 테입은 확실이 s/n ratio가 좋다. 크롬 pdm 의 pre-echo 현상이 재미있다. 어쩌면 이걸 또다른 창작 도구로 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테잎만 할 수 있는 것이니까.

2/25

246의 high speed, highest speed로 녹음 비교. loudness를 -14 LUFS에 다 맞추고, 여섯 음원을 비교.

아내와 병원에 다녀왔다.

멜로디가 놓일 '곡의 길'을 닦는 일. 이걸 뭐라고 이름붙여야 할까.

내가 곡을 짓는 과정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문득 느낀다. 임프로바이즈에 가까워질 때도 있다.

2/26

일곱 번 째 봄, 그간 한 해도 빠짐없이 온 노란 손님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면, 세상도 나도 불행하게만 느껴질 지 모른다.

보현이 꿈에 나왔다.

목욕을 하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27

Víkingur의 음악으로 만든 mixtape을 틀어놓고 아이에게 시를 읽어주었다.

몸이 날아갈 듯이 바람이 분다.

Song#6를 다시 복기해두다.

2/28

머릿속에 멜로디나 진행이 떠올랐을 때, 애써 붙들지 않고 내버려둘 때가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100% 기억에서 지워진다. 다시 떠오르면 인연이고 그렇지 못하면 인연이 아닌 거다.

'Flowerlet' 메리의 시집에서 만난 이 계절의 단어.

Song#6의 길을 닦아두다.

이다울 님의 책을 다 읽다.

봄눈으로 246 첫 데모를 만들다. 마지막으로 카세트 테잎에 목소리를 녹음해 본 게 언제였을까.

3/1

3/2

마종기 선생님에게서 메일이 왔다. 지금 준비하시는 신간에 대한 소회를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3/3

나는, 나의 욕심도 호기심도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다.

복수초와 노루귀가 피었다. 이끼낀 돌 위로 햇살이 내렸다. 옆으로만 뻗은 가지들은 아직 잠들어 있다.

3/4

새벽,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다.

3/5

첫 전정을 하였다.

7인치 릴데크가 결국 고장났다.

대문 개폐기가 고장나서 수리를 했다.

3/6

봄순이 벌써 움을 틔우고 있다.

농협에서 견적서를 받아들고 보조금 신청을 하러 갔는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2월 24일에 마감을 해버렸단다.

글 쓰기.

3/7

달리기. 하루 온종일 기계 수리에 매달리다.

R2R recorder의 'fringing effect'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울 게 끝없이 널렸다.

수정/교정. 새 원고지에 옮겨 담기.

3/8

새벽, 눈에 들어온 메리의 싯구.

Everything touches everything.

지영 아버지, 봉식 아버지를 과수원에서 만났다. 창고 공사 일정을 조율하고, 가지치기를 조금 더 한 뒤 돌아왔다.

동률이 홍삼을 보내주었다.

3/9

앵두꽃이 피었다. 대견하구나.

과수원에 콩알만한 새싹이 돋아난다. 귀엽지만, 무섭다.

이미지

Lula가 돌아온다!

Grechen Parlato의 새 앨범이 나왔다. 참 지적인 앨범이구나. Marcel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Marcel에게 축하 메일이라도 보내볼까.

한 그루, 한 그루, 더 천천히, 집중해서, 전정하기.

Pfizer 곡 작업에 다시 매달리다. 정말 마무리할 때다.

3/10

물수리가 쏜살처럼 내려와 물 위를 첨벙대다, 두 발로 물고기를 낚아 챈다. 물 밖으로 물고기를 끌고 나간 물수리가 두 발로 물고기를 누른 채 한참을 앉아있다.

내일부터 오두막에서 자야 하기에 이것 저것 챙겨두고 돌아왔다.

3/11

새벽마다 보현에게 시를 읽어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 두꺼운 책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시를 읽다보면 영혼이 몸과 떨어져버리는 경험을 한다. 영혼은 시에서 멀어지는데, 입으로 시를 여전히 시를 읽고 있는 것이다. 공연장에서도 간혹 그럴 때가 있다. 몸은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지만, 정작 나의 영혼은 멀리 떨어져서 그런 내 '몸'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이다. 몸과 영혼은 늘 함께 가지 않는다.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를 반복한다. 파형을 그리듯 붙었다 떨어졌다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한창 시를 읽는데, 무엇에 놀랐는 지 보현이 허둥댄다.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아주 낮은 저주파 소리가 들린다. 40? 50 Hz? 쯤 되려나. 바다는 아직 어둡다. 포구에 배가 닿았나. 양어장에 온 물차 소리일까.

https://twitter.com/Lord_Arse/status/1369538456653856768?s=20

카세트 테잎을 처음 발명한 루 오텐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누군가 이런 글을 남겼다. "카세트 테잎은 우리 시대의 유튜브였습니다."

집 공사 시작.

이렇게 아름다운 무늬가 낡은 싱크대 아래에 숨어 있었다니.

경선님이 신간을 보내주셨다.

3/12

<Spectres II. Resonances> 책이 도착했다.

'res'와 'rien'에 대하여. 

3/13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고 운동과 편곡과 채보와 마당에 널부러진 플라스틱 조각들을 빨아당기고 치우고 이도저도 안 된 것들은 그냥 흘려버리고

3/14

보현시 시를 듣다 또 나가버렸다. 또 어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 걸까. 아니면 지겨워진 걸까.

스코어링.

두 번 다시 들을 가치가 없는 음반이란, 세상에 없다고 난 생각한다.

3/15

시가 몇 편 남지 않았다. 어느덧 우린 메리 올리버의 60년대로 갔다.

'하얀 왜곡'에 대하여 생각하다.

편곡.

릴데크 수리. 텐션암 뚜껑을 열고 스크류를 조였다. 왼쪽 샤프트가 흔들리는데,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어디선가에서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

앵두꽃이 절정이다.

벚나무 허리에 꽃망울이 돋아났다.

3/16

예쁘고 따뜻하게 새벽비가 내린다.

다시 공사. 방바닥을 엄청나게 닦았다.

깨고 부수고 자르고 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마스크를 끼고 편곡을 완성했다.

미련없이 보냈다.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오래된 SM911 테입을 꺼내 칼리브레이션을 하는데, 테잎에서 <오 사랑>이 흘러나온다.

3/17

<Devotions> 다 읽다.

시란, 시인이 보내준 '시 사람' poem-human이 아닌가 싶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한 앨범의 모든 곡을, 한 뮤지션의 모든 곡을 사랑할 수는 없다해도, 마음이 통하는 뮤지션이 보낸 노래를 하나하나 만나다 보면,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통하는 '노래 사람' music-human 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메리 올리버의 <Dog Songs>가, <개를 위한 노래>가 되어 돌아왔다.

3/18

윤슬이가 편지를 보내주었다.

몇십 년 만에 어머니가 차려준 생일 밥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