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가을 비료. 과수원에는 여뀌가 한가득.

갈리시아어에는 비를 일컫는 단어가 70 여 개가 된단다. 의성의태어가 많은 바스크어에는 나비를 부르는 이름만 백여 가지가 있단다.

10/2

덩굴 걷고, 밭 정리하고, 방제 밑준비.

노벨화학상 후보로 mRNA 관련 화학자들이 거명되고 있다. Vlamidir Torchilin? 이름이 눈에 익어 누군가 생각해보니, 예전에 컨퍼런스에서 보았던 러시아 화학자구나. 그런데 DDS로 노벨상을 받기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10/3

거지덩굴 열매가 굉장히 약효가 좋은 항염, 항암제하는 걸 알았다.

올 가을 처음으로 긴팔셔츠를 꺼내 입었다. 따뜻하다.

비소식에 방제를 못하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다. 근력 운동을 했다.

10/4

영양방제 첫 날. 그 사이 풀이 잔뜩 자라서 약줄을 당기는 것조차 어렵다. 유기농 과수농사란, 다리에 모래주니를 주렁주렁 달고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줄이 풀에 걸리고, 나무 등걸에 걸리고, 정신이 없다. 아내가 팔꿈치가 좋지 않아 내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일을 해야 했다.

음악은 나눠 들을 수 있지만, 취향은 누군가와 나눌 수 없다.

성택씨가 책을 보내주었다.

2023년 노벨 화학상은 Quantum Dot으로. 바웬디가 드디어 상을 받았구나.

10/5

진아의 새 앨범. 소중하다.

방제를 할 수 있을까 싶게 바람이 거센 날.

보현과 서귀포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과수원으로. 보현을 오두막에 남겨두고 약줄 정리. 호스 터넥터 하나에 금이 갔다는 아내의 말에 몽키 스테너를 들고 가서 분해하다. 다행히 농협에서 커넥터만 사서 갈아끼우면 되겠다.

약줄을 당기는데 여뀌 뭉치가 딸려온다. 힘들다. 뭐 하나 수월한 게 없는, 유기농. 과수원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와글거리고, 시끄럽고, 걸리적거리고, 복잡하고,

그리고 다이나믹하고, 그래서 살아있고,

집에 와서 코코넛 활성탄 정수기 설치를 했다. 기존 정수기를 해체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10/6

비오는 날. 진수 집에서 연습을 했다. 너무나 귀여운 모모.



브라질 사람과 결혼을 해서 7년 째 브라질에 살고 있는 포르투갈 배우 Mafalda Pinto가, '브라질식 억양'을 쓴다는 이유로 포르투갈 팔로워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브라질인에 대한 포르투갈인들의 혐오 사고가 늘고있다는 뉴스, 그런데 포르투갈 아이들이 브라질 말을 따라가는 추세라는 뉴스가 드물지 않다. 생각할 게 많아진다.

엘아센 발레 메카닉 공연 보다. 음악과 무용이 어떤 층분리 없이 완벽히 하나가 된 무대. 스티브 라이쉬, 테리 라일리, 모리스 라벨, 모든 음악이 좋았고,

공연이 끝나고 매니저님과 한참 얘기를 나누고 왔다. 공항 근처 숙소에 오니 밤 10시 즈음. 저녁도 먹지 못하고 무척 지친 밤.

10/7

아침 8:30 화상회의 시작. 승리님, 혁진 감독님, 다은씨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얘기 나누다.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좋다.

부여로 가는 길. 다리에 무언가가 움직여서 보니, 사마귀 한 마리가 내 손 위에 폴짝 뛰어올라온다.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사마귀 천국인 우리 과수원에서부터 따라온 건 아닐텐데. 급히 차를 세우고 길가 풀숲에 내려다주었다. 부여까지 같이 갈 걸 그랬나.

부여에서 반다운 얼굴들을 참 많이, 오랜만에 많났다. 경환, 사라씨, 상봉, 주연, 순용. 레미제라블 앨범과 공연을 같이 했던 진아! 그리고 현진씨, 선희씨 등등.

여전히 속이 많이 부대낀다.

군산으로 가서, 감사하게도 밤에 문을 연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잠들다. 보현이 혈변을 누고 구토를 했다는데, 걱정이다.

Sufjan Stevens가 앨범 <Javelin>을 냈고, SNS에 이런 글을 남다.

오늘 <Javelin>이 나왔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이 앨범은 내 일생의 빛과 같던 나의파트너, 에반스 리차드슨에게 바치는 앨범입니다. 그는 4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빛나는 사람이었어요. 생기 넘치고, 사랑과 웃음, 호기심과 진정성과 늘 재미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 만날까 말까 할만큼 드물고 아름다운 존재, 귀하고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참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사람 관계란 참 힘듭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누군가를 아껴준다는 건 애쓰는 만큼  가치있는 것. 특히 그리 많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은,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당신이 사랑할만한 이를 찾게 된다면, 가까이 두고, 안아주고, 누리고, 돌보고, 갖고있는 모든 것을 주세요. 힘들 때라면 더 상냥하고, 한결같이, 많이 참고, 더 이해하고, 열렬하게, 현명하게, 그리고 당신답게.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충만하게 그리고 축복과 경외심과 사랑으로 살아가세요. 오늘은 하느님이 주신 날. 누리고 기뻐합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hugs & kisses

10/8

이른 아침, 군산 호텔에서 바라본 새만금과 공단 지대. 승리님이 보내준 <Mater Dolorosa> 영상을 보는데, 울컥해서 혼났다.

나에게 무용은, 감정과 이성의 여과장치 없이 내 심장으로 오는 것이다.

군산 공항. 항공편이 몇 편 되지 않는 이곳에 새 공항을 짓는다고?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방조제로 갇힌 갯벌. 여기저기 염생식물이 힘겹게 자라나고 있다. 이 광대한 바다 무덤에 가슴이 막힌다.

집에 돌아와 만난 보현은, 다행히 조금 진정된 듯 하다. 마중나온 아내, 보현과 점심을 먹고 집으로.

10/9

휴식. 물 속을 걷다. 보현의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둔 바퀴벌레 약을 몰래 먹었던 건 아니겠지.

TP가 집에 와있다. 듣는데, 문제가 많다. 우울하다. 어쩌지.

다음부터 엘피는 내지 말까.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나, 나는. Pierre에게 메일을 보냈다.

10/10

신기한 꿈을 꿨다. 전쟁이 났고 화학무기 공습을 받은 나는 손이 비틀어지며 점점 더 고통이 몸에 스며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대체 무슨 일인지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래를 불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이 너무 아파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Pierre에게서 메일이 왔고 미안하다며 기술팀과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브라질 방언 컨텐츠를 보았다. 왜 이런 게 재미있을까, 나는.

대문 수리하다.

10/11

Lupo에게서 메일이 왔고 (TP 관련), Piere는 TP 승인 후 며칠 안에 정식 생산이 가능하니 타임라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메일을 주었다. 나는 Lupo에게도 3 장의 TP를 보내주겠냐고 그에게 요청했다.

점심 때 다올을 만나고, 아내가 물 700 리터를 받아두었다.

허상점에서 랩스커트팬츠를 사왔다. 공연 관련 긴 메일을 보냈다.

신비한 꿈을 꿨다. 과수원 풀숲에서 아주 하얀 꿩알 두 새를 보는 꿈인데 너무 예뻐서 아내를 부르는 꿈. 잠이 깨고는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인 밤.

이하나님이 출판 스케줄을 보내오셨다.

10/12

3:30에 일어났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Puxa vida!

1교 교정지 도착. Carioquês 공부. Lupo가 TP 체크를 같이 하겠다고 했다.

10/13

마저 가을 방제. 마지막 호스는 결국 수리를 못한 채.

가을 메밀밭.

10/14

<음유시인문학상> 시상식 다녀오다. 동환형, 효제, 준관이 함께 가주었다.

날이 몹시 추웠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시상식 즈음엔 너무 추워 입김이 나올 정도였으니.

10/15

아침에 어머님과 숙모님이 홍어탕을 끓여주셨다.

수민 결혼.

정동에 갔다가 공항으로 갔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다. 실제로 만났을 때나, 문자로나, 통화로나, SNS로나, 방송으로나,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강아지에게나,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똑같은 사람.

10/16

1교 시작. 어딘가 암담하다.

승리님, 감독님, 다은씨와 줌 미팅.

10/17

계속 교정.

10/18

묵음에서 커피 사오다. 밤 늦게 교정이 끝났다. 과수원에 잠시 들렀다. TP를 보냈다는 메일을 받았다.

10/19

아침에 교정지를 보내고 물 속을 걸었다.

LP 디자인 99.9% 완료.

부다페스트 공연 셋 리스트 보내다. 공연 전, 내 노래 가사를 헝가리어로 낭독할 예정이란다.

마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오래전 세션을 해주던 성은에게서 전화가 와 정말 깜짝 놀랐고 반가웠다.

10/20

11월 18일 죄르즈 발레단 무용 공연 예매. 19일 공연도 끊을까.

이른 새벽, 아내의 시를 읽었다.

박스 300개를 받아두었다.

가족들 제주 도착.

10/21-10/24

엄마 팔순 여행.

24일 민트박 님을 오두막에서 만났다. Szavina와 첫 헝가리어 수업. <Transcendence> 믹스.

10/25

Szavina와 수업. <Transcendence> 믹스. TP를 받았다.

10/26

지구 상회에 가서 점심을 먹고, 농원 엽서 디자인 회의를 하다.

<Transcendence> 믹스. 새벽 모니터.

TP에 노이즈가 너무 많다. 그야 말로 멘붕.

10/27

Szabina와 수업. Airbnb 예약. 100년 넘은 피아노가 있는 집이다.

새벽 모니터. <Transcendence> 믹스. 어제 spatial sound 기능이 켜져있었음을 알고 좌절하다.

TP관련 메일 보냈다.

10/28

농민장터에 가서 히카마, 차요테, 독새기콩 등을 사오다.

새벽 중산간 공원을 걸으며 모니터를 했다. 아무도 없는 성당 앞에서 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하다가,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행위가 기도와 다름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리를 떴다. 새벽 예배당에 앉아 <Transcendence> 를 듣다가,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 믹스 컨펌.

끝이다. 마지막까지 왔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정확히 한 시간 짜리 곡. 용량만 1.3 기가인 <Transcendence> 믹스를 슈테판에게 보내다.

10/29

밤늦게 슈테판이 최종 마스터를 보내왔다. 나는 세군데 클릭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

10/30

허상점에 가서 셔츠를 맞추고, 공연 착장 회의. 줌미팅 (w/승리, 혁진, 진수, 다은)

Szavina와 수업.

10/31

운동. 헝가리어 연습. 2교지가 pdf로 왔지만, 교정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내가 바닷가에서 순비기열매를 한 줌 따와 건네주었다.